외국에 살면 생기는 일 — 손님 맞이의 모든 것

2026. 6. 17. 07:50​뉴질랜드 이야기 (NZ Life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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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 살다 보면 한국에서 손님이 옵니다.
그냥 오는 게 아니에요. 장기로 옵니다. 한국에서 뉴질랜드까지의 비행시간이 11시간이 넘으니, 어렵게 왔는데 며칠 있다 가기엔 아깝다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가성비 여행을 하려면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논리, 사실 틀린 말도 아니긴 하죠.
저희 가족은 형제자매도 많고, 친척들 사이에서 외국에 사는 첫 번째 가족이다 보니 초반부터 방문객이 끊이질 않았어요. 주변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왔다 가냐"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거기다 조카들이 어학연수를 오고, 남편이 8남매의 막내이다 보니... 뭐, 더 설명이 필요할까요.

처음엔 그냥 다 반가웠어요

아무도 없는 타지에서 살다 보면, 한국에서 누가 온다는 소식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집니다. 아이들도 어리고, 손님이 오기만 해도 집 안 분위기가 달라지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처음 1년은 "1년만 살다 온다"고 했던 탓에 친구몇명, 시댁식구, 친정식구 할 것 없이 모두들 그 기간 안에 다녀가신 것 같아요. 패키지 여행으로 오신 분들을 공항 호텔까지 픽업 가서 집으로 모셔와 저녁을 대접하고, 다시 호텔로 데려다드리기도 했어요. 어떤 분들은 아예 한국의 겨울 방학 한 달을 통째로 뉴질랜드에서 보내기도 했고요.
그 시절엔 그냥 좋았어요. 같이 여행 다니고, 음식 해먹고, 뉴질랜드의 자연을 함께 만끽했죠. 힘든지도 몰랐어요.

크리스마스때 집에서

그런데 이게 또 다 때가 있더라고요

문제는 손님은 처음이지만, 저희는 같은 곳을 몇 번이고 다시 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처음 온 손님을 "저희가 자주 다니는 동네"만 데려다닐 수는 없잖아요. 북섬의 대표 명소들 — 로토루아, 타우포, 타우랑가, 와이토모 동굴, 호빗마을 — 손님이 올 때마다 어김없이 갔던 것 같아요.
나중엔 입장료가 꽤 비싼 호빗마을 같은 경우, 저희 가족은 주차장 차 안에서 기다리고 손님들만 투어를 하고 오기도 했답니다. 웃픈 일이지만 사실이에요 😅

로토루아 지열지대
로토루아 농장체험 하는 곳
늘 손님이 많이 오는 집이라 식탁이 커요
남섬 테카포호수
형님들 오셨을때 남섬에서

코로나가 잠시 쉬어가게 해줬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방문이 뚝 끊겼고, 저희는 그 기간에 처음으로 4가족이 남섬 여행을 갔어요. 뉴질랜드에 온 지 10년이 훌쩍 넘어서요. 한국에서 손님이 없어도 주로 여기서 만난 가족분들과 같이 여행을 다녔었는데 처음으로 오롯이 저희 가족만 여행을 한 것 같아요. 뭔가 새롭고 편안한 여행이었어요. 애들도 많이 커서 더 그랬던거 같아요. 남섬은 국내 여행이긴 해도 비행기값에 숙박비까지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서 미루고 미뤄왔던 건데, 막상 가보니 너무 아름다워서 "왜 이제야 왔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그리고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한국에서의 연락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남섬을 다녀온 이후엔 손님들께 남섬을 안 추천할 수가 없었어요. 남편의 누나들 여섯 분과 한분의 매형 구순의 어머님이 오셨을 때는, 남편과 아들이 그분들을 모시고 남섬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같은 여행지라도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늘 흥겨운 식구들이라 그런지 5박 6일간의 여행을 정말 즐겁게 다니셨더라구요. 저는 오클랜드에서 일하면서 쉬었죠.ㅋㅋ
그 여행의 포인트가 하나 있었는데요.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즈음, 꼭 SG워너비의 '라라라' 를 틀어서 다들 잠을 깨웠다고 해요. 덕분에 오클랜드로 돌아왔을 땐 일행 모두가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죠. 뭔가 그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우리 집에서 자야 손님이죠

한 가지, 키위 친구들과 한국 손님의 확실한 차이점이 있어요.
키위들은 보통 집은 저녁 식사 때 방문하고, 잠은 근처 숙소를 예약해서 자요. 그런데 저희는 한국 정서상 그게 쉽지 않았어요. 당연하다는 듯이 손님을 집에서 재워야 했고, 침대가 부족하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서라도요.
집에 같이 있다 보니 밤늦게까지 저녁 자리가 이어지고, 아침이면 또 다 같이 밥을 준비해야 하고. 그게 예전엔 힘든 줄도 몰랐는데, 애들도 다 크고 나서야 조금씩 느껴지더라고요. 이젠 예전처럼 무조건 우리집으로 오세요는 못할 거 같아요. 

손님은 천사라는데

요즘도 가끔 한국에서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옵니다.
처음엔 "아,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솔직히. 그러다가 "손님은 천사라는데" 하는 생각이 뒤따라오고요. 그러다 또 "그래도 안 오는 것보단 낫겠지" 로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
외국 살이가 길어지면서 감각이 무뎌진 건지, 아니면 진짜로 손님 맞이가 에너지가 드는 일이 된 건지 — 아마 둘 다겠죠.
그래도 이 집을 거쳐 간 모든 분들 덕분에, 우리 가족의 뉴질랜드 생활이 훨씬 더 풍성해졌다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같이 나눠 먹은 밥, 함께 달린 드라이브, 차 안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처럼요.
 
무엇보다 현재의 집으로 이사후에 저희 부모님이 오셨다 가셨는데 집안 구석구석 동네 골목골목 마다 엄마 아빠의 동선이 베어 있어서 지금도 너무 좋아요. 이 집에 가족들이 와서 같이 지냈었다는 느낌이 뭔가 마음을 몽글몽글 하게 하는 거 같아요. 한번만 더 오시겠다고 하셨는데 아직 남섬을 안모시고 가서 다음에 오면 꼭 같이 가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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