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31. 13:37ㆍ뉴질랜드 이야기 (NZ Life Info)
오클랜드에 살다 보면 마오리 문화, 유럽계 백인(Pākehā), 그리고 아시아계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어요. 중국인이 아시아계에선 제일 처음 골드러시 때 (1865년) 왔다는데 그 오게 된 이유가 1865년 웨스트코스트에서 금이 새로 발견되자 유럽계 광부들이 오타고 금광을 버리고 다 떠나버렸대요. 그러자 오타고 지방 정부와 더니든 상공회의소가 "빠르게 쓸 수 있는 노동력"으로 중국인 광부들을 초청한 건데 그 이유가 부지런하고, 말썽을 안 피우고, 버려진 광산을 다시 파줄 것 같고, 어차피 나중에 중국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였다네요. 그에 반해 한국인은 1960년에 해운회사 직원으로 소수가 왔고 1987년 뉴질랜드 이민법이 출신 국가 차별 없이 경제적·사회적 조건을 기준으로 이민을 허용하게 되면서 물꼬를 텄고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왔대요. 이야기가 옆으로 샜네요.
어쨌든 이 땅에 사람들이 처음 발을 디딘 게 언제였는지, 호주랑은 뭐가 다른지 뉴질랜드 역사의 뿌리를 파헤쳐 볼게요.
🌊 제일 처음 온 사람들 — 마오리
뉴질랜드는 지구상에서 사람이 가장 늦게 정착한 땅 중 하나예요. 학계에서는 동폴리네시아인들이 1250~1300년 사이에 처음 도착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Te Ara Encyclopedia of New Zealand) 배 한 척이 아니라 별을 보고, 바람과 해류를 읽으며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해서 온 거예요. 요즘으로 치면 GPS도 없이 태평양을 건넌 셈이니 정말 대단하죠. 오클랜드 박물관에 가면 Waka라고 큰 배가 있는데 그걸 타고 들어왔다고 해요. 요기서 아이들 프라이머리 다니면 마오리 창조신화 하늘의 아버지 랑이누이(Ranginui)와 대지의 어머니 파파투아누쿠(Papatūānuku)에 대한 책을 을 많이 접하게 돼요. 우리나라의 단군신화 같은 거죠.
일부 마오리 전통에서는 폴리네시아 항해사 '쿠페(Kupe)'가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한 사람으로 전해져요. 그리고 '마오리(Māori)'라는 단어 자체는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유럽인들이 오고 나서야 원주민들이 스스로를 구분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말인데, 그 뜻이 그냥 '보통 사람'이에요. 뭔가 겸손하면서도 재미있지 않나요? 우리가 보기엔 마오리랑 다른 섬나라 사람들이랑 구분하기가 힘든데 들은 바에 의하면 마오리 문신은 좀 더 부드럽다고 해요. 그리고 마오리를 구분할 때 와카파파(whakapapa)라고 마오리 족보가 있는데 마오리 조상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게 몇 세대 전이든 상관없이 마오리로 볼 수 있어요. 뉴질랜드는 마오리 부족에 속해 있으면 정부로부터의 혜택이 많아요.
🚢 첫 번째 유럽인은 어디서 왔을까?
유럽인 중 뉴질랜드를 처음 목격한 사람은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타스만(Abel Tasman)이에요. 1642년, 전설처럼 전해지던 '남쪽의 거대한 대륙'을 찾아 항해하다가 남섬 서쪽 해안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게 타스만 해(Tasman sea) 예요. 근데 재미있는 건, 타스만이 뉴질랜드를 발견하고도 실제로 땅을 밟지는 못했어요. 해안을 발견하고 배를 데려다가 마오리 전사들이 공격해서 선원 몇 명이 죽고 그냥 도망쳤거든요 😅
그러니까 발견은 했는데 발도 못 디디고 이름만 여기저기 남긴 셈이에요.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127년이 지난 1769년, 영국인 제임스 쿡 선장이 처음 도착해 3번의 항해를 통해 뉴질랜드를 제대로 탐험하게 되죠. 'New Zealand'라는 이름도 사실 네덜란드에서 왔어요. 네덜란드의 주 이름 '제일란트(Zeeland)'에서 따온 거예요.
쿡의 항해 이후 뉴질랜드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국에서 왔고, 일부 금광꾼이나 죄수들은 호주를 거쳐서 타스만 해를 건너왔어요. 영국에서 뉴질랜드까지는 당시 배로 약 100일이 걸렸다고 하네요.
⚖️ 뉴질랜드 vs 호주 — 뭐가 다를까?
"호주는 죄수들이 세운 나라 아니야? 뉴질랜드는 달라?" 이 말 들어본 적 있으시죠? 그래서 호주랑 다르다는 뉴질랜드 사람들도 있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틀린 건 아니에요. 뉴질랜드는 공식적인 유배지(penal colony)가 아니었거든요.
뉴질랜드는 단 한 번도 공식 유배지로 운영된 적이 없어요. 오히려 1870년대 딱 10년 동안에만 약 20만 2천 명의 자유 이민자들이 들어왔는데, 이건 영국이 북미와 호주에 보낸 죄수 숫자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숫자예요..
🤝 뉴질랜드만의 독특함 — 와이탕이 조약
1840년 2월 6일, 와이탕이에서 뉴질랜드 초대 총독 윌리엄 홉슨이 마오리 족장들을 모아 영국 왕실과 조약을 맺었어요. 500명 이상의 족장이 서명한 이 조약이 바로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이에요. 지금도 뉴질랜드 정치와 법률의 근간이 되는 문서로, 호주에는 이런 조약 자체가 없었어요. 이게 두 나라의 원주민 정책이 갈린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예요.

여하튼 주요 골자는 통치권은 영국이 땅은 마오리가 가진다는 건데 지금도 영어 문서와 마오리 문서의 해석이 틀려서 논란이 많아요. 와이탕이 조약에는 두 개의 텍스트가 있고, 마오리어 버전은 영어의 정확한 번역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은 아예 두 개의 다른 조약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도 해요. 조약이 서둘러,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작성됐고,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마오리어로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어요. 그래서 뉴질랜드 정부는 와이탕이 재판소(Waitangi Tribunal)를 만들어서 지금도 역사적 토지 분쟁, 어업권, 심지어 라디오 주파수까지 마오리가 빼앗긴 것들에 대한 보상을 계속 처리하고 있어요.
🌿그래도 이게 뉴질랜드의 뿌리예요
불완전하고, 논란도 많고, 지금도 싸우고 있지만 — 와이탕이 조약은 뉴질랜드의 건국 문서예요. 영국 관리들과 마오리 족장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정부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약속을 담은 문서죠.
호주는 원주민과 조약 자체를 맺지 않았어요. 그냥 "이 땅은 아무도 없는 땅"이라고 선언해 버렸죠. 그 차이가 지금의 두 나라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어요.
완벽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대화를 시작했다는 것 — 그게 뉴질랜드가 지금까지 이어오는 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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